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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봉사 대웅전은 우리나라 현존 유일의 3층목탑식 전각이어서 보물 제163호로 지정되어 보호하여 왔으나 1984년 4월 3일 불에 타 1986년 12월에 복원하였다. 대웅전의 목조삼존불좌상은 1984년 불이 났을 때 다행히도 타지 않았다.
석가여래좌상의 좌우로 아난과 가섭존자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합장하며 시립하고 있는 특이한 삼존형식이다. 대웅전이 화재를 당한 1984년 11월에 개금하여 상태는 아주 양호하다.
상호는 넓적하여 사각형에 가까우며 조선후기의 불상들이 그러하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머리는 나발이 촘촘하고 육계는 아주 작은 원통형(지름 9㎝, 높이 3.5㎝)으로 처리하였으며 머리 중간에 반월형의 계주(길이 10㎝, 높이 3.5㎝)가 있다. 백호는 이마에서 양미간 사이로 내려와 있으며 아주 작다. 눈은 일자형(一字形)으로 반개하였으며 눈꼬리가 약간 올라가 있다. 코는 반원통형에 가깝고 콧볼의 상단만 약간 파서 형식적으로 처리하였으며 인중은 뚜렷하고 길다. 입은 호형이고 양 입가는 약간 눌러져 있어 미소를 머금고 있는 듯 하다. 눈썹과 눈은 먹선으로 그렸고 입은 붉은 칠을 하였다.
콧수염은 두 줄로 옆으로 그었으며 턱밑에도 먹선으로 수염을 그렸다. 턱밑에는 1조의 음각선을 넣어 양감있게 처리하였다. 귀는 크고 두툼하며 귓볼이 뭉퉁하다. 목은 아주 짧으며 삼도가 있다. 법의는 통견이며 두툼하고 衣紋은 간단한 편이다. 왼쪽 어깨에서 내려 온 법의 자락은 수직으로 흘러 손목까지 감싸고 있으며 오른쪽 어깨에서 내려 온 법의자락은 팔굽까지만 내려와 옆으로 흘러 半袒으로 처리하여 팔굽에서 팔목까지는 법의의 의문이 없다. 승각기는 없으며 裙衣는 가슴 밑까지 올라와 있다. 군의의 상단 옷주름은 규칙적으로 주름잡아 仰蓮形으로 장식화한 형식으로 처리하였고 그 밑에 1조선의 가는 의대가 돌려져 있을 뿐 띠매듭은 없다. 복부의 의문은 넓은 U자형이 1조선 양각되었고 발목에서 흘러내린 의문은 양무릎 밑까지 넓게 펴져 있다.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있다. 오른 손은 손바닥을 펴서 자연스럽게 무릎 안쪽에 올려 놓고 있으며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구부려 오른발바닥 위에 놓고 별조하여 손목 속에 끼워 넣었다. 불상의 하면은 목판으로 마무리하였는데 가운데에 가로 19㎝, 세로 10.5㎝ 크기의 장방형 복장공이 뚫려 있다.
조성연대를 알 수 있는 자료가 2개나 있다. 하나는 불상 조성 발원문이며, 다른 하나는 극락전 본존불의 대좌에 묵서되어 있는 명문이다. 이들 기록에 의하면 이 석가불은 좌우에 시립하고 있는 가섭과 아난존자와 함께 1694년(조선 숙종 20)에 조성되었다.
발원문은 극락전과 삼층전(현재는 대웅전이란 현판이 붙어 있음)의 불상을 동시에 만들고 쓴 발원문이란 점에서 특이하다. 불상의 조성시기는 '康熙三十三年甲戌年'으로 조선 숙종 20년(1694) 임을 알 수 있다. 삼층전(현재의 대웅전) 안에 있는 조각상의 명칭은 본존이 석가여래이며 좌우협시는 가섭과 아난존자로 확실히 밝혀져 있다. 뿐만아니라 불상의 조성동기, 불상 조상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이 모두 기록되어 있어 불상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쌍봉사 대웅전의 삼존불은 본존이 좌상이고 좌우의 협시상인 아난과 가섭존자상이 입상이다. 이러한 도상은 흔하지 않은 예로 특이하다고 하겠다. 뿐만 아니라 이 불상은 사각형에 가까운 상호, 콧볼의 상단만 악간 파서 형식적으로 처리한 코, 오른쪽 팔굽까지만 걸쳐 있는 半袒형식의 법의, 裙衣 상단의 옷주름이 규칙적으로 주름잡힌 앙련형의 형식 등의 양식으로 볼 때 17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볼 수 있어 연대를 알 수 없는 다른 조각상의 표준작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도난당하였던 불상의 조상기문(발원문)이 다시 되돌아와 불상의 조성시기와 명칭, 불상 조성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모두 알 수 있어서 그 사료적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화순읍 - 쌍봉사 (약 40여분 소요)
입장료, 주차료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