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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영롱대는 석교마을 앞을 흐르는 수려한 충용강(남면 주산리 , 복교리 앞을 흐르는 동복천을 임진왜란시 의병장인 김덕령 장군의 군호을 따서 선조대왕이 충용강이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화순군사)가(현재의 福橋 아래 쯤)에 있었는데 1987년 주암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이 되어 이축했다가 다시 1989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한다. 현재도 주암호의 수려한 경관을 조망하며 남향으로 위치해 있다.
영롱대는 동복현감이었던 이학래(李鶴來)가 壬申年(1872년) 9월 하순에 지은 玲瓏臺記에 의하면 ‘...昔在宣廟時 瓏齋 金先生 以退陶門人 築精舍於臺之上 ...’란 기록으로 보아 宣祖代인 1587년 무렵에 瓏齋 金鯤變(1541년-1592)이 築亭 한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동복읍지(1915년 刊) 蔭職 편에 보면 瓏齋 金鯤變이 丁亥年(1587년 선조20년)에 광주에서 동복에 옮겨와 살았고 강에 치우쳐서 대를 축조하였는데 영롱대라 하였다는 기록를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이곳 영롱대를 ‘金將軍釣臺’라고도 부르는데 연유는 瓏齋 선생의 從子인 忠壯公 金德齡이 부모를 위하여 광주에서 이곳까지 와서 물고기를 잡아 갔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영롱대는 정면 3간, 측면 2간의 팔작집이며 두리기둥을 사용한 종도리 장혀집이다. 후면 중앙으로 1간 온돌방을 배치하고 나머지는 우물마루로 처리하였으며 우물마루 주위는 난간없이 개방한 이 지역 고유의 누정의 형식을 고스란히 전승하고 있는 건물이다.
瓏齋 金鯤變은 퇴계의 문인으로 한강 정구, 은봉 안방준, 송강 정철,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등의 여려 제현과 교유하여 문명을 날렸던 인물이다. 영롱대는 광산김씨 집안에서 訪帖을 내여 보성, 화순, 광주 등지에서 모인 유림들이 음력 4월 5일에 모여 詩會(후손은 詩讀會)를 매년 실시했는데 수몰이 되어 이건한 이후로 그 맥이 끊어졌다. 영롱대는 비록 2차례의 이건 사실이 있으나 16세기 후반(1587년 무렵)에 건립된 정자로써 건축적 가치는 물론이고 역사적 가치도 뛰어난 정자다.